이인관1집자켓.jpg

호흡을 고르고 색소폰 속으로 긴 숨을 내쉰다.  갇혀 있던 음들이 비로소 풀려나 육화(肉化)한다.  그러므로 몸에서 떠난 음은 몸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다.  그리고 그 것들은 뒤돌아 보지 않고 기꺼이 제 자리를 찾아 소멸한다.  뮤지션과 그가 빚어낸 음의 경계에선 시간이 불꽃처럼 파닥거린다.  몰아(沒我)의 순간, 파닥거리는 시간은 물리성을 거역해 새롭게 확장된다.  그 황홀한 시간은 일회적이고 불가역적이다.  그러므로 뮤지션의 오늘은 언제나 완전한 처음이다.  이인관이 음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자리도 아마도 이 지점이리라. 
 이인관의 호흡과 그에 공명한 음들은 순간적으로 명멸할 뿐, 집착하지 않는다.
자기가 부린 음을 저 아득한 세상 속으로 내보내고, 다시 호흡을 골라 다음 음을 준비하는 찰나의 시간들이 촘촘히 이어져 이인관의 서른세 해의 길이 되었다.  그러니 그 길 또한 아득하고 때론 고단하되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 아름다운 이인관의 음악적 여정이 첫 기착지에 도착했다.
여기 놓여있는 그의 첫 솔로 음반은 그의 몸이 세상과 어떻게 부딪히고 갈등하고 화해해 왔는가, 그리고 그의 음악이‘오늘, 여기’에서 무엇을 전망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펑크, 소울, R&B의 트렌드에 힘을 실은 본 앨범은 단순히 팝 음반이라고 하기엔 재즈의 그늘이 넓다. 팝과 재즈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크로스오버적 감수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새로운 음악적 성찬을 만들어 내고 있다. 팝이되 가볍지 않고 재즈이되 무겁지 않다.
팝과 재즈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게 서로를 경원해왔다. 팝은 재즈의 권위적, 선민적 엘리티즘을 냉소했고, 재즈는 팝의 대중추수적 상투성을 경시해왔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도 팝과 재즈는 급속히 섞이고 있다. 재즈의 엘리티즘은 피로하고 팝은 동어반복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어법의 수혈이 필요했다. 한국의 젊은 재즈뮤지션들이 팝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이 둘의 상보적 컨텐츠를 찾는데 의외로 적극적이라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그 일군의 뮤지션 중 한 명이 이인관이라는 사실은, 그의 지금보다 앞으로를 더 주목해야 할 이유다. 
이번 음반은‘새로움은 경계에 있다’는 시대적 신호에 이인관이 자신의 영민한 안테나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경계의 안과 밖을 두루 살피며 음악의 대중적 외연을 넓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음악은 소통이다. 자신이 느꼈던 아름다움에 누군가 함께 반응해달라는 몸짓이다.
그 간절한 몸짓 앞에 장르의 경계란 거추장스런 것이다. 경계의 의미와 넘어섬의 의미를 모두 체득한 이인관의 다음 걸음이 궁금해진다.